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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젊음 사랑 질투

질투는 나의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젊음 사랑 기형도

 

시인 기형도가 발표한 입속의 검은 잎에 수록된 <질투는 나의 힘>은 1991년 문학과 지성사를 통해 발간되었다. 기형도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창작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989년 종로 파고다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60여 편의 시가 실린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은 암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일상에 대한 환멸과 고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문학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와 관계없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방황하는 청춘들은 기형도의 시로부터 끌림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시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기형도의 모습, 그 결과물인 '시'를 통해 (나를 포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라는 마지막 구절이 유명한 기형도의 또 다른 작품 <빈 집>보다도 <질투는 나의 힘>을 더 좋아한다. 20대 초반에는 <빈집>을 더 좋아했으나 취향이 바뀌는 걸 보면 내 삶의 양식도 그때와는 변화했나보다. 오늘은 기형도의 시가 나에게 더 밀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시를 다시 읽어 보았다.


두 시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시어는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각자가 정의내리는 '사랑'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개념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한다고 말한다. 

 

기형도 또한 마찬가지로 사랑을 열망했다. 그러나 화자는 왜 <빈 집>에서 문을 잠그고 자신의 사랑을 가두어 버렸을까? <질투는 나의 힘>에서 알 수 있듯, 그토록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메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가엾은 '그 사랑'이 빈집에 갇힌 것이 먼저인지,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먼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화자가 <빈집>에서 잃어버린 그 사랑을 찾아 미친듯이 헤메었으나, 젊은 시절의 열망과 질투를 원동력 삼아 사랑을 갈구하였으나,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형도의 생각이 작품에 투영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한편, 만약 사랑을 잃지 않았다면 화자에게는 젊은 시절의 원동력이 되었던 열망들과 질투가 존재했을까? 가장 많이 채우기 위한 전제조건은 가장 많이 비우는 것이라는 역설처럼, 결여와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미친듯이 무언가를 열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젊은 시절은 결핍의 시간이다. 만족을 모르며, 끊임없이 대상을 열망하고 질투하며 그 과정을 희망이라 착각한다. 내 마음의 부지에 무리하여 공장을 지어 올린다. 그 공장에서는 자신을 연료 삼아 결핍을 채울 결과물을 생산코자 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공장이 뿜어내는 연기가 스스로를 황폐화시킨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 공장의 대표적 생산품이 젊은 날의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아프다. 그토록 열망하였고, 질투하였고, 희망하였으나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프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다섯 감각에서 오는 아픔이 아닌 내 마음의 공장에서 오는 아픔, 사랑은 통감(痛感)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결여된 존재이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구태여 공장을 지어나가는 것 또한 어쩌면 젊은 시절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