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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친과 육류 사이> 천수호 : 교육과 사육 사이

육필 원고 청탁서를 받고

모처럼 만년필로 시를 옮겼다

 

언제 묻었는지 퍼런 핏줄의 잉크가 손에 번져 있다

 

육필이라는 말의 피맛과 피냄새처럼

다정하면서도 섬뜩한

 

육(肉)! 이란 놈은

몸, 피, 살을 모두 포함하는데

 

문득 떠오른 두 낱말 육친과 육류

육친에는 피맛이 나고 육류에는 살맛이 난다

 

피맛은 맛보다는 농도가 우선이고

살맛은 맛이 우선이다

 

이 육덩어리는 어디에 달라붙느냐에 따라

악성도 되고 양성도 된다

 

열여덟 딸은 꼭 악성종양 같다던 누군가의 말에

나는 내 딸의 과육(果肉)을 와작.

 

씹다가 혀를 깨문다

피맛인지 살맛인지 모를 과육의 맛

 

피와 살과 과육

그 어느 것도 뱉어버릴 수 없어

 

피맛과 살맛이 뒤섞인 과육을

꿀꺽, 삼킨다

 

 

<육친과 육류 사이> 천수호


육필, 육친, 육류

 

肉親에 의해 敎育받고 자라온 나,

肉親과 肉類는 어쩌면 育의 차이

 

살맛이 나는 肉類는 飼育

피맛이 나는 肉親은 敎育

 

육덩어리가 악성종양처럼 느껴질 때는

열여덟 딸을 敎育하는 것인지

飼育하는 것인지 헷갈리겠지

 

꿀꺽 삼켜버린 果肉은 다시 피가되고 살이되고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肉親와 肉類 사이의 혼동